성령으로 난 자는 영이다 (요한복음 3:1-17)

설교자 : 리차드 앙 목사님 (2024년 12월 22일)

1. 서론

1.1 예수님은 왜 오셨는가?

이번 대림절과 성탄절 시즌을 맞아, 저는 첫 성탄절에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에 대한 질문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은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대화를 더 깊이 살펴보고 싶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가장 중요한 대화 중 하나인 이 대화는 영성(spirituality)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1.2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다?

지난 20여 년 동안 북미 지역에서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다" (Spiritual but not Religious, SBNR)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사회학자들조차 SBNR의 정확한 의미를 정의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이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철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세상에 지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돈과 숫자로만 정의되는 삶을 거부하며, 제도화된 종교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며, 하나님을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헌신적인 삶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화와 조화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났으며, 세속적인 세상에서는 이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한 관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성은 점점 더 부흥하고 있지만, 종교는 쇠퇴하고 있다.”

1.3 오늘의 주제

오늘 저는 여러분을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안내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하지 말라”라는 규율로만 가득한 종교와 참된 영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성은 본래 “영(spirit)”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합니다. 제가 나누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참된 영성에 대해 주신 지혜입니다. 이를 통해 성령께서 인간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엿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1. 오늘의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가 이루어진 배경(문맥)

  2. 하나님의 나라와 영성(영적 삶)

  3. 하나님은 곧 사랑(사랑)

2. 대화의 배경과 오늘날

2.1 50년 전의 캐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캐나다인들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는 미국보다 높은 비율이었으며, 당시 큰 교단의 지도자는 사회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주교나 대주교 같은 직책을 맡았고, 보통 높은 학력을 가졌으며 정치인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한편, 거리 설교자들도 있었습니다. 거리 설교자들은 공식적인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몇몇은 진실되고 훌륭했지만,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신뢰받지 못하며 "가짜 약장수"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통 교단의 지도자가 거리 설교자를 찾아가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2.2 대주교와 거리 설교자

니고데모는 단순한 주교 이상의 인물로, 아마도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회)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종교적 권위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부르셨습니다(요 3:10). 이는 그가 평범한 설교자가 아니라 당대의 가장 뛰어난 교사였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예수님은 거리 설교자였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학위를 가지지 않았고, 바울처럼 가말리엘 같은 유명한 스승에게 배운 적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무리를 이끌었는데, 그들은 세련된 도시 사람이 아닌, 시골 억양을 사용하는 다른 지역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님에게서 특별한 무언가를 보았고, 예수님이 가짜가 아님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밤에 찾아갑니다. 자신의 평판을 걸고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요 3:2).

3. 영성과 하나님의 나라 (요 3:3)

3.1 니고데모의 혼란 (요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