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종류의 친절

2025년 11월 9일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쁩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함께 모인 이 자리에서 여러분 모두가 ‘친절’이라는 단어를 함께 생각하고 되돌아보기를 초대하고 싶습니다. 친절이란 무엇일까요? 친절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성품 중 하나입니다. 장을 본 사람의 손이 가득 차 있을 때 문을 잡아주고,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연민을 보이는 것—이런 것들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친절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든 아니든 누구나 갖기를 기대하는 성품처럼 보입니다. 또한 우리는 아이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라”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성경이 말하는 친절은 성령의 열매로 언급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 ‘열매’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것이 의도적인 돌봄의 결과로 드러나는 성품이라는 뜻이며, ‘성령의’ 열매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것이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깊고 변혁적인 역사로부터 비롯된 성품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친절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만화만큼 좋은 시작도 없겠죠. 이 만화가 무엇인지 아는 분 계신가요? 이 작품은 2023년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스트리밍된 프로그램입니다. 바로 블루이(Bluey) 입니다.

블루이는 호주 방송 공사(ABC)가 제작한 유아용 TV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여섯 살짜리 블루 힐러 강아지 블루이와 그녀의 가족(아빠 밴딧, 엄마 칠리, 여동생 빙고)의 일상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각 에피소드는 약 8분 길이이며, 인생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 덕분에 어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대부분의 유아용 TV 프로그램처럼, 각 에피소드에는 이야기 속에 담긴 교훈이 있습니다.

시즌 2의 “덕 케이크(Duck Cake)”라는 에피소드에서는 블루이가 아빠 밴딧과 함께 여동생 생일을 위해 복잡한 ‘오리 케이크’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블루이가 돕기 전에, 밴딧은 먼저 장난감을 정리하고 치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블루이는 자기 쪽 장난감만 치우겠다고 고집을 부리죠.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고, 여러 가지 유혹에도 불구하고, 블루이는 결국 장난감의 일부만 치웁니다. 그리고 다시 더 재미있어 보이는 부엌으로 들어가죠.

부엌에 들어갔을 때, 밴딧이 케이크의 마지막 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리의 머리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집니다. 밴딧은 낙심해서 바닥에 앉아버립니다. 블루이는 그런 아빠의 슬픈 표정을 보고, 부엌을 청소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결심합니다. 청소를 하면서 블루이는 마음속에서 기쁨이 느껴지는 것을 발견하고, 꼬리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도울수록 더 큰 기쁨을 느꼈고, 결국 아빠가 다시 부탁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여동생의 장난감도 정리하게 됩니다.

에피소드의 마지막에서 블루이는 행복으로 가득 차며 이렇게 묻습니다.

“꼬리가 없는 동물들은 자기가 행복한 걸 어떻게 알까?”

친절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친절’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

사전을 찾아봐도 ‘친절(kindness)’은 대체로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다정함, 관대함, 사려 깊음,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는 마음.’

친절이란 결국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열매로서의 친절,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친절, 그리고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그 ‘친절’은 단순히 착하게 굴거나, 돕거나, 관대하게 행동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친절이라는 개념 전체는 히브리어 단어 헤세드(Hesed) 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세드’는 한 단어로 완전히 표현하기 어려운, 매우 풍성한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사랑(love)’, ‘신실한 사랑(faithful love)’ 또는 ‘충성(loyalty)’, ‘자비(mercy)’, ‘긍휼(compassion)’, ‘친절(kindness)’ 등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 단어는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시편 136편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반복적으로 선포합니다.